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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조선] ‘회장님’ 눈에 들면 ‘꽃가마’ 타고 무혈입성, 헤드헌팅업체 통하면 ‘홀랑 벗고’ 무한검증 - 이영미 전무 인터뷰
Date : 2014-10-06

[이코노미조선] ‘회장님’ 눈에 들면 ‘꽃가마’ 타고 무혈입성, 헤드헌팅업체 통하면 ‘홀랑 벗고’ 무한검증
(이코노미조선 제120호 2014-09-29)


최고경영자(CEO)는 기업의 최고 리더이자 최종 의사결정권자다. CEO가 어떤 사람이냐 혹은 어떻게 경영하느냐에 따라 한 기업의 흥망성쇠가 결정되기도 한다. 그야말로 기업의 운명을 좌우하는 열쇠를 쥔 ‘키맨(Keyman)’이 바로 CEO다. 일반적으로 역사가 깊고 규모가 크면서 인재 육성 제도가 잘 갖춰진 기업은 내부에서 CEO를 길러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내부에 마땅한 적임자가 없는 경우에는 외부에서 CEO를 스카우트하는 게 불가피하다. 특히 능력과 리더십을 갖춘 CEO가 당장 절실한 기업은 외부 수혈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CEO 리크루팅(Recruiting)’은 어떻게 이뤄질까. 기업 세계에서 ‘별 중의 별’로 지칭되는 CEO로 간택되는 사람들은 어떤 경력과 조건을 갖춘 것일까. 또 기업들은 어떤 유형의 CEO를 선호할까. CEO 채용시장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은 항상 책을 곁에 두고 수시로 책장을 펼치는 독서광(讀書狂)이다. 그는 지난해 봄 무렵 새로 출간된 <적의 칼로 싸워라>는 제목의 책을 읽다가 그 내용에 감탄했다. 비즈니스 세계와 경영 방법론을 풍부한 통찰력으로 엮어낸 솜씨가 범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도대체 저자가 어떤 인물인지 궁금했다.

저자는 이명우 당시 한양대 교수였다. 이 교수는 삼성전자에서 24년간 근무하며 해외영업으로 잔뼈가 굵은 마케팅 전문가 출신이다. 삼성전자 해외 마케팅팀장과 미국 가전사업 총괄부문장을 거쳤다. 2001년 삼성전자 경쟁업체인 소니의 한국법인인 소니코리아 사장에 발탁되면서 화제를 낳기도 했다. 그는 2006년 한국코카콜라보틀링 회장으로 영입된 데 이어, 2007년에는 레인콤으로 자리를 옮겨 대표이사와 부회장을 역임했다. 그러다 2010년 경영일선을 떠나 한양대 경영대 특임교수로 강단에 섰다.

풍부한 실전 경험과 탄탄한 이론 체계를 갖춘 이명우 교수의 책은 김재철 회장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모양이다. 김 회장은 “이명우 교수를 모셔오라”는 특명을 내렸다. 이 교수를 동원그룹의 모태이자 핵심 계열사인 동원산업 대표이사 자리에 영입하려는 의도였다.

동원그룹 측의 제안을 받은 이명우 교수는 처음에는 사양했다고 한다. 동원산업의 주력사업인 원양어업이나 식품가공 분야에 대해 문외한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동원그룹의 ‘삼고초려’를 결국 받아들였다. 동원산업이 글로벌 시장을 무대로 뛴다는 점에서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활용할 수 있다는 판단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서정동 동원그룹 홍보실장은 “김재철 회장께서 <적의 칼로 싸워라>는 책을 읽고 이명우 사장의 식견에 감명을 받으셨던 것으로 안다”며 “이 사장은 처음에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을 때 주저하기도 했지만, 심사숙고 끝에 합류를 결정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책 한 권’ 출간 계기로 CEO 낙점된 경우도
기업이 내부 인력을 배제하고 외부에서 CEO를 영입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회사 내부에 CEO를 맡길 만한 인물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CEO 영입은 오너가 직접 결정하는 중대 사안이다. 그만큼 오너가 내부 CEO 후보군에 대해 신뢰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CEO 영입은 기존 CEO의 후임자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하지만 경영위기에 빠져 있거나 기업 이미지에 타격을 입은 기업이 분위기를 반전하기 위해 외부 인물을 CEO로 영입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 경우는 십중팔구 경륜이 풍부하고 노련한 ‘CEO 유(有)경험자’를 데려가기 마련이다.

한 유력 헤드헌팅업체의 간부는 이렇게 말했다. “CEO 추천을 의뢰한 고객사 관계자들과 미팅을 할 때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있어요. ‘우리 회사가 몇 년째 매출이 제자리걸음이다’라는 거죠. 심지어 ‘회사 매출이 떨어지고 있어 걱정이다’라는 말도 듣습니다. 고객사들은 회사에 긍정적 변화를 불러올 사람을 CEO로 추천해달라고 신신당부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길을 걸어본’ 인물이 필요한 거죠.”

CEO는 경영실적을 책임지는 게 기본이다. 나아가 기업 이미지나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CEO는 해당 기업의 대표자일 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실적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CEO 브랜드’는 그만큼 전반적인 기업가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박세훈 한화갤러리아 대표는 지난 2012년 현대카드에서 전격 영입됐다. 그는 40대 중반 나이에 재벌 계열사 대표로 발탁돼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박 대표는 2005년 현대카드 통합마케팅 본부장을 맡아 카드업계 후발주자인 현대카드를 단숨에 선두권으로 도약시킨 주역이다. ‘현대카드 신화’를 창조한 일등공신인 셈이다.

그는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에서 컨설턴트로 활약하다가 2005년 현대카드 통합마케팅 본부장으로 영입됐다. 이후 ‘블랙카드’ 등을 앞세워 이른바 ‘VVIP 마케팅’의 진수를 보인 바 있다. 또 현대카드 특유의 마케팅 이벤트인 ‘슈퍼콘서트’ 등 혁신적인 마케팅 프로그램을 선보인 것도 그의 작품이다. 한화갤러리아가 박 대표를 영입한 것은 그의 경험과 역량이 백화점 사업에서도 빛을 발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차석용 LG생활건강 대표이사 부회장은 외부에서 영입된 CEO가 ‘대박’을 터뜨린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그는 글로벌 생활용품업체 프록터&갬블(P&G) 출신이다. 미국 본사 근무부터 시작해 한국 총괄사장까지 지냈다. 그 후 2001년 해태제과 대표이사 사장으로 영입됐다가 2004년 LG생활건강 대표이사 사장으로 부임했다.


-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왼쪽)은 <적의 칼로 싸워라>는 이명우 사장(오른쪽)의 저서에 감명을 받아 동원산업 CEO로 영입했다고 한다.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 영입은 ‘신의 한 수’
그가 취임한 이후 LG생활건강은 놀라운 변화를 경험했다. 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해 회사 덩치가 비약적으로 커진 것은 물론이고, 36분기 연속 흑자라는 보기 드문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가 취임할 무렵 LG생활건강의 연간 매출은 1조원을 조금 웃돌았다. 그런데 지금은 분기 매출이 1조원이 넘는 회사가 됐다. 단적으로 10년 만에 회사를 4배로 키운 셈이다. 자연히 회사 임직원들도 차 부회장을 따를 수밖에 없다. LG그룹 오너인 구본무 회장 입장에서도 차 부회장 영입은 ‘신의 한 수’나 다름없었다.

이인익 LG생활건강 홍보팀 차장은 “차 부회장은 더페이스샵, 코카콜라음료 등 대형 M&A를 시도해 모두 성공을 거두면서 회사의 성장동력 확보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며 “아마 10대 그룹 계열사 가운데 지난 10년간 LG생활건강만큼 고속성장을 이룬 사례는 극히 드물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이 외부에서 CEO를 영입할 때는 해당 인물에게 요구하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두 가지가 ‘전문성’과 ‘실적’이다. 사실 전문성이 없으면 회사 경영을 파악할 수 없다. 또 실적이 없는 CEO는 임직원들이 진심으로 따르지 않는다.

국내 최대 헤드헌팅업체 커리어케어의 이영미 전무는 이렇게 말한다. “단순히 명성이 있거나 인품이 훌륭하다고 해서 CEO로 발탁하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CEO 영입을 원하는 고객사들은 가령 ‘이 사람은 맨땅에 헤딩해 무언가를 성취했다’, ‘1~2년 만에 매출액을 30~40%나 끌어올렸다’ 등등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가진 인물을 선호합니다. 그래야만 기존 내부 인력들이 인정을 하죠. 만약 실적이 없는 인물이 CEO 자리에 앉게 되면 잠재적인 CEO감들이 견제하거나 반발하는 부작용을 낳게 됩니다.”

‘전문성’과 ‘실적’ 외에도 요구되는 조건이 더 있다. ‘업계 리딩 기업 출신’과 ‘글로벌 시장 경험’이라는 타이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100% 그 조건을 충족해야만 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조건을 갖춘다면 CEO로 낙점을 받는 데 한층 유리한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외부에서 CEO를 영입하려는 기업들은 어떤 기업 출신을 선호할까. 이 질문에는 딱 한 개의 기업만 언급해도 부족함이 없다. 그 기업은 바로 삼성그룹이다.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한 삼성 출신들에 대한 기업들의 선호도는 생각보다 강력하다. 그들이 ‘일등 삼성’에서 배우고 익힌 지식과 노하우, 그리고 직접 체험한 ‘삼성 시스템’을 자신들의 기업에 이식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삼성 임원 출신들은 다른 기업으로 옮길 때 직위가 한두 단계 상승하는 경우가 많다. 삼성 계열사에서 상무로 퇴직한 인물이 2년간 쉬다가 중견기업 CEO로 영입된 케이스마저 있을 정도다. 이쯤 되면 삼성이 국내 기업들을 위한 ‘CEO 사관학교’ 역할도 하는 셈이다.


-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은 외부 영입 CEO로서 가장 성공적인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왼쪽)
- 박세훈 한화갤러리아 대표는 ‘현대카드 마케팅 신화’ 창조를 발판으로 영입됐다.(오른쪽)

삼성 임원 출신들이 ‘영입 선호도 1위’
또한 삼성 출신이라면 업종에 관계없이 발탁해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단적으로 황창규 KT 회장이 그런 사례다. 그는 반도체 전문가로 이름을 날렸지만, 연관성이 적은 이동통신 기업의 수장으로 무난히 입성했다. 또 손욱 전 농심 대표이사 회장은 삼성종합기술원 원장을 지낸 전기·전자 전문가이지만 전혀 다른 업종인 식품업체의 CEO로 영입되기도 했다.

국내 CEO 리크루팅 시장에서 삼성 출신에 대한 선호도는 그야말로 압도적이라는 게 헤드헌팅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여타 재벌기업 출신들은 삼성 출신과 견준다면 명함조차 내밀기 어렵다는 것이다.

CEO급 후보 추천 경험이 많은 한 헤드헌터는 “국내 대기업 고객사들이 한화, 코오롱, 효성 출신을 데려와 달라고 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면서 “국내 대기업들의 CEO 영입 선호도는 삼성 출신이 1순위이고, 그나마 2순위는 글로벌 시장을 리드하는 외국계 기업 출신”이라고 말했다.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 시장 진출이 크게 확대되면서 해외활동 경험도 외부 영입 CEO의 필수적인 ‘스펙’으로 요구되고 있다. 특히 대기업이나 외국계 기업에서 글로벌 시장 경험을 쌓은 인물들은 다른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으로 옮겨갈 때 유리하다.

반도체용 부품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중견기업 A사의 박모 대표가 그런 경우다. 박 대표는 모 대기업 반도체연구소에서 근무하다 글로벌 화학업체 듀폰으로 옮겨 20여년간 경험을 쌓은 뒤 A사 CEO로 영입됐다. A사는 지난 수년간 해외시장 확대를 위해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고 있다. 그런 터에 굴지의 다국적기업에서 내공을 쌓은 박 대표를 CEO로 내세운 것이다.

박 대표는 “사실 헤드헌터가 추천한 기업에 갔다가 한 지인이 소개한 A사에 흥미를 느껴 지원하게 됐다”며 “사장실에 앉아 있는 시간이 거의 없을 만큼 해외시장을 돌아다니며 고객사 영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대표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요즘 외부에서 발탁된 CEO들은 대개 마케팅이나 영업에 능한 ‘현장형 CEO’들이 주류를 이룬다는 게 헤드헌팅업계 관계자들의 귀띔이다. 예전처럼 사장실에서 서류 결재나 하면서 경영관리에 무게를 두던 ‘관리형 CEO’에 대한 선호도가 낮아졌다는 것이다. 전반적인 경기침체 속에서 모든 기업이 실적과 이익을 부르짖는 터라, 이런 현상은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는 셈이다.

CEO의 외부 영입 과정은 대개 헤드헌팅업체를 통해 진행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한편으로는 기업 오너가 직접 ‘낙점’을 하거나 지인을 통해 추천을 받는 경우도 왕왕 있다. 이명우 동원산업 사장은 김재철 회장이 ‘필이 확 꽂혀’ 직접 발탁한 케이스에 포함된다. 또 지난 7월 오리온그룹 부회장으로 옮긴 허인철 전 이마트 사장도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이 직접 ‘콜’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손욱 전 농심 회장은 오너인 신춘호 농심 회장의 막역한 지인이 강력하게 추천해서 영입됐던 케이스로 전해진다.


- 황창규 KT 회장(위)과 손욱 전 농심 회장(아래)은 삼성 전문경영인 출신으로, 이(異)업종 기업 CEO로 영입된 케이스다.

CEO 영입 과정은 ‘돌다리 두드리며 건너기’
일반적으로 헤드헌팅업체를 통해 CEO를 영입하는 과정은 몇 단계에 걸친 치밀한 조사와 검토, 평가 절차를 거친다. CEO가 새로 영입되면 회사 전반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에 ‘돌다리도 두드리며 건너가는 식’으로 일을 진행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영미 전무의 말이다. “보통 고객사의 의뢰를 받게 되면 CEO 후보들의 실적, 전문성, 장·단점, 리더십, 커뮤니케이션 스킬, 조직 융화력, 인성 등 해당 인물의 모든 것을 홀랑 벗긴다고 보면 됩니다. 또 후보자와 함께 일한 상사, 부하, 유관부서 관계자에 이르기까지 6~7명의 ‘레퍼리(평판 조회처)’와 인터뷰를 통해 평판을 확인하죠. 그런 다음 A4지 약 10장 분량의 보고서를 고객사에 전달합니다. 보통 2~3명 정도 복수 추천을 하고, 고객사가 최종 선택을 하는 방식입니다. 그렇게 해도 마음에 안 든다면서 원망하는 기업들도 없지 않죠.”

어느 기업의 CEO 자리에 앉는다고 장밋빛 미래가 펼쳐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흔히 ‘기업의 별’로 지칭되는 임원을 가리켜 ‘임시직’, ‘일용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임원은 계약직이다. 실적이 나쁘면 언제 해임될지 모르기 때문에 임시직, 일용직이라는 자조 섞인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별 중의 별’인 CEO는 임원보다 형편이 더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기업전문 평가사이트 CEO스코어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30대 그룹 CEO 평균 재임기간은 2.6년에 그치고 있다.

내부 승진 CEO들에 비해 외부 영입 CEO들은 더욱 가시밭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처음 보는 임직원들과의 융화를 통해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데다, 오너의 기대치에 걸맞은 실적까지 단시간에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궁지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CEO라는 자리가 가진 명암(明暗)의 한 단면이다.



작   성 │ 이코노미조선 김윤현 기자
도움말 │ 커리어케어 이영미 전무
출   처 │ 이코노미조선 제 120호 (2014-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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